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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다음으로 가장 많은 대장경을 보유한 지리산 하동 쌍계사

여행/사찰

by MasterHwan[마스터환] 2023. 8. 27.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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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스터환입니다. 경상남도의 하동군, 함양군, 산청군, 전라남도의 구례군, 전라북도의 남원시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있는 지라산에는 쌍계사가 있습니다. 얼마전 외가댁에 갔다가 외삼촌과 함께 지리산 하동 쌍계사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쌍계사 방문을 통해 해인사 팔만대장경 외에 쌍계사에도 목판대장경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해인사 다음으로 가장 많은 대장경을 보유한 지리산 하동 쌍계사

지리산 하동 쌍계사

 

쌍계사는 삼신산의 하나로 방정산이라 불리는 지리산 남록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총 13교구 본사입니다

 

쌍계사는 서기 723년(신라 선덕왕 22년)에 삼법, 대비 두 스님이 당나라 6조 혜능 대사의 정상을 모시고 와서 꿈의 계시대로 눈 속에 칡꽃이 핀 rhcdmf 찬아 정상을 봉안하고 절을 지은 것이 처음입니다

 

서기 830년 진감혜소(774~850) 국사께서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삼법, 대비스님의 옛 절터에다 육조 영당을 짓고 절을 크게 확장하여 옥천사라 하시고 이곳에서 선과 불교 음악인 범패를 가리치다 77세로 입적하셨습니다. 그 후 청강왕은 이웃 고을에 옥천사가 있고 산문밖에는 두 시내가 만난다 하여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리셨습니다. 서산대사의 중창기를 보면 중섬, 혜수 스님의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후 벽암, 소요, 인계, 법훈, 용당 스님 등이 중창을 하였고, 1975년부터 고산 스님에 의해 복원, 중수 중창을 거쳐 현재와 같은 대가람의 사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산내 암자로는 국사암과 불일암이 있고 문화재로는 국보 1점, 보물 9종,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13점, 기념물 1점, 문화재자료 5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하동 쌍계사 지도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쌍계사를 향해 걷다 보니 가장 먼저 쌍계사 일주문이 나왔습니다.

 

지리산 쌍계사 일주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86호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 관문으로, 한결 같은 마음으로 정신을 수양하고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쌍계사 일주문은 조선 인조 19년(1641)에 벽암 화상이 지었다고 하며, 1977년에 고산 화상이 손절하여 고쳤습니다. 일주문으로서는 드물게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올렸습니다. 건물 높이에 비해 지붕이 넓지만 추녀 밑에 받침 기둥을 세우지 않고, 기둥의 앞뒤에 보조 기둥을 세워 지붕을 안전하게 받치고 있습니다. 처마는 2단으로 겹처마이며, 처마를 받치는 기둥머리 장식이 기둥 사이에도 있는 나포 형식이어서 화려합니다. 또 기둥머리 장식 부재가 가늘고 섬세한 점 등 장식성이 강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의 양식보다는 근대식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86호 지리산 하동 쌍계사 일주문

일주문 양 옆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있습니다. 날씨가 워낙 더워 당장 시원한 계곡물에 들어 가고 싶었습니다

 

지리산 하동 쌍계사 일주문 오른편에서 흐르는 계곡

 

일주문을 지나 걷다 보니 경내에 들어 섰습니다. 경내에 오르니 가장 먼저 구층석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리산 하동 쌍계사 구층석탑

 

이 탑은 고산 화상께서 인도 성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 2과 그리고 전단나무 불상 일존을 모셨습니다. 이 탑은 국보 제 48호 월장사 팔각 구층석탑과 유사한 형식으로 불기 2531년(서기 1987년) 1월 3일 시공하여 불기 2534년 (서기 1990년) 3월 15일에 완공하였습니다. 발심 서원한 백창기 부부의 단독 사주로 이뤄졌습니다.

 

 

지리산 하동 쌍계사 구층석탑

쌍계사 구층석탑을 지나 대웅전으로 가기 전에 팔영루가 나옵니다.

 

지리산 하동 쌍계사 팔영루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 74호

 

팔영루는 진감 선사가 섬진강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8음률로 범패또는 어산이라는 불교 음악(우리 국악의 시초이기도 함)을 작곡한 대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진감 선사가 신라 문성왕 2년(840)에 쌍계사 창건 당시 팔영루를 세웠고, 그 뒤 조선 중종 4년(1509)에 중섬 선사가 고쳐 짓고, 문신인 어득강에게 글을 부탁하니, 어득강이 서운과 팔영을 찬양하는 8수의 한시를 지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후 인조 19년(1641)에 벽암 화상이 쌍계사를 다시 지을 때 대웅전과 함께 팔양루를 고쳐 지었고, 1979년에 고산 화상이 새로 손질하여 고쳤습니다. 정면 5칸, 측면 3칸 크기인 2층 건물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입니다. 부처나 보살을 모시지 않는 곳이어서 처마를 받치는 기둥머리 장식이 없지만 처마는 2단인 겹처마로 만들었고 단청도 화려합니다. 팔영루는 우리 민족에게 맞는 범패를 만들어 내고 또 범패의 명인을 교육했던 뜻깊은 곳입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 74호 지리산 하동 쌍계사 팔영루

팔영루를 지나 대웅전 가기 전 큰 비석이 하나 있습니다. 진감선사탑비 입니다.

 

지리산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국보 제 47호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는 신라 말의 명승 진감선사 혜소의 덕을 기려 세운 탑비로, 진성여왕 1년(887)에 세워졌습니다. 선사의 속성(스님이 되기 전의 성)은 최씨로, 애장왕 5년(804)에 당나라로 가서 신감 대사 밑에서 승려가 되었고, 흥덕왕 5년(830)에 중국 선종의 법맥을 잇고 신라로 돌아와 당시 왕들의 우러름을 받다가 77세의 나이로 지금의 쌍계사인 옥천사에서 입적하얐습니다. 885년에 헌강왕은 혜소에게 진감선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대공령탑이라는 탑호를 내려 탑비를 세우도록 했습니다. 이 비석의 글은 최치원이 짓고 쓴 사산비명(신라 때 최치원이 남기 네 편의 비명) 가운데 하나로, 당대의 문장 연구와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참고 자료로서 가치가 높습니다. 전체 높이는 363cm, 비석 몸체의 높이는 213cm, 너비는 약 100cm, 두께는 22.5cm입니다.

 

국보 제 47호 지리산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지리산 하동 쌍계사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28호

석등은 절 안의 어둠을 밝힐 뿐만 아니라, 부처의 진리를 빛으로 비춰 중생을 깨우고 선한 길로 이끈다는 뜻도 있습니다.

쌍계사 석등에는 등불을 놓아 불을 밝혀 두는 화사석과 그 위에 얹는 지붕돌이 없어서 본디 모습을 알기 어렵습니다. 위 받침돌은 여덟 잎의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으로 조각 하였고, 아래 받침돌은 반대로 연꽃이 위로 솟게 조각하여 대칭을 이룹니다. 받침돌에 새긴 연꽃무늬는 입체적이고 사실적이지만, 석등의 기둥은 가늘고 길며 단순한 형태인 점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지리산 하동 쌍계사 석등

드디어 보물 500호 쌍계사 대웅전이 나왔습니다.

 

하동 쌍계사 대웅전

 

보물 제 500 호

쌍계사 대웅전은 진감 선사가 신라 문성왕 2년 (840) 창간 당시에 세운 건물인데 임진왜란(1592 ~ 1598_) 때 불탔던 것을 조선 인조 10년 (1632)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으면서 오늘날에 이릅니다. 쌍계사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에는 삼존불과 사보살을 모셨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마주하고 서있는 정중앙에 석가모니불을, 우측에는 약사여래불을, 좌측에는 아미타불을 모셨고, 석가모니불 좌우에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을 약사여래불 우측에 일광보살을 그리고 아미타불 좌측에는 관세음보살 등 사보살을 모셨습니다. 이렇게 삼존불 사보살을 모신 단을 상단이라 하고 좌측으로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제자들을 수호한다는 화엄신장을 모신 단을 중단 또는 신중단이라 하고, 맨 왼쪽에 영가(돌아가신분)를 모신 단을 하단 또는 영단이라고 합니다. 쌍계사 대웅전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입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팔여뎗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 지붕이며, 기둥이 높아 전체적으로 건물의 규모가 크게 느껴집니다. 건물 천장은 우물 정(丼)자 모양으로 꾸몄고, 불단 위로는 지붕 모양의 닫집을 화려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조선시대 불교 건축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우리나라 건축사외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보물 500호 지리산 하동 쌍계사 대웅전

대웅전 안에는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이 있습니다.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랴삼불조상 및 사보살입상은 나무로 만든 칠존불로,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불의 삼불 좌상과 일광, 월광, 관음, 세지보살의 사보살 입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은 쌍계사 대웅전 내부 가운데에 모셔져 있고 그 양 옆에 약사불과 이미타불이 놓여 있으며, 약사불과 아미타불의 좌우에 사보살 입상이 서 있습니다. 삼불 좌상의 높이는 172 ~ 203cm 이고, 사보살 입상의 높이는 177 ~ 186cm입니다

이 칠존불은 조선 인조 17년(1639)에 칭헌 스님 등 11명의 승려 화가가 만들었습니다. 불상의 재료는 붉은 소나무이지만 불상 어깨 위로 길게 드리워진 머리칼은 황토로 만들어 붙인 것입니다. 불상의 손과 발은 따로 만들어 끼었고, 등 뒤에는 복장구(불상 안에 금은보화나 불경 등의 유물을 넣어 두는 구멍)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특히 석가모니불은 옷차림 형식이 17세기 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잘 보여 줄 뿐만 아니라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어,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불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대웅전 뒤에는 금강계단과 마애삼촌불이 있습니다

(좌, 가운데) 쌍계사 금강계단 (우) 쌍계사 마애삼존불

금강계단 왼편에는 화엄전이 있고 화엄전에는 쌍계사 목판 대장경이 있습니다.

 

하동 쌍계사 목판 대장경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85호

화엄전에 봉안된 쌍계사 목판 대장경은 1603년에 제작된 보물 선원제전집도서 22판, 1604년에 제작된 원돈성불론, 간화결의론 11판, 1611년에 제작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335판 등이 있고, 국가지정과 지방지정 등이 있습니다. 목판 대장경의 전체 수량은 불경과 불교 관련 서적 등 총 33종 1,743판입니다. 쌍계사는 해인사 다음으로 많은 경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대장경판은 주로 1603년에서 1903년 사이에 여러 차례 제작된 것입니다. 쌍계사의 말사인 능인암에서 제작하여 쌍계사로 옮겨온 것과 쌍계사 본사와 국사암 칠불암 등에서 제작한 것이 있습니다. 능인암 판은 대부분 1603 ~ 1604년에, 국사암판은 1903년에 제작되었으며 그 나머지는 17세기와 18세기에 간행되었습니다. 쌍계사 화엄전에 봉안된 목판대장경은 쌍계사의 오랜 역사와 함께하여 400여년에 걸친 목판대장경의 변천사를 보여줍니다. 한편, 국보 제 47호 하동 쌍계사 진감 선사 탑비가 훼손되어 있지만, 조선초 영조 2년(1726) “유당신라국지리산쌍계사교사진감선사비명병음각”의 목판이 있으므로 그 내용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쌍계사 목판대장경을 통해 각 시기에 읽힌 불경의 종류와 당대를 살았던 고승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불교 문화유산의 가치를 더해줍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85호 목판 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지리산 하동 쌍계사 화엄전

하동 쌍계사 선원제전집도서 목판

 

선원제전집도서 목판은 지리산 신흥사나 순천 송광사 계통의 판본을 바탕으로 복원된 것입니다. 조선 선조 36년 (1603) 겨울에 지리산 능인암에서 다시 새겨져 이곳 하동 쌍계사로 옮겨진 이후로 현재까지 22판이 모두 완전하게 갖추어져 전해지고 있습니다

「선원제전집도서」 는 당나라 규봉 대사가 자신이 쓴 불교 교리집 「선원제전집」 100여 권에서 요점만 간추려 정리한 책으로, 서, 권상, 권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선원제전집도서」 에는 이 책의 저술 목적이 제시되어 있으며 5가지 종류의 참선(외도선, 범부선, 소승선, 대승선, 최상승선)에 대해 설명되어 있습니다. 또한 선종과 교종을 비교한 내용과 이들이 화합할 수 있는 방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권하 제 25장과 제 26장은 한 판에 양면 2장의 글이 새겨져 있고, 나머지는 모두 한 면에 좌우로 2장씩 4장의 글이 새겨져 있어 목판은 좌우로 긴 사각형 모양입니다. 현재 보각 경판과 종복 경판 3판을 포함하여 80장 22판이 완전한 구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화엄전 왼편에는 삼신각이 있습니다.

지리산 하동 쌍계사 삼신각

대웅전 왼편에는 나한전이 있습니다.

 

하동 쌍계사 나한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24호

 

나한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오백 명의 나한 중에서 열여섯 명인 십육 나한을 모신 전각입니다. 나한은 인간 세계의 온갖 번뇌를 끊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부처님의 경지에 이른자를 말합니다. 쌍계사 나한전의 십육 나한상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양쪽 옆으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전각은 신라 문성왕 2년(840)에 진감 선사가 쌍계사 창건 당시에 처음 세웠으며, 조선 인조 19년(1641)에 벽암 화상이 고쳐지었다고 전해집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입니다. 건물의 크키가 작고 장식도 없어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이 듭니다. 건물 아래를 받치는 기단을 높게 쌓아 주변의 대웅전, 명부전과 균형을 맞추었습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24호 지리산 하동 쌍계사 나한전

지금까지 해인사 다음으로 가장 많은 대장경을 보유한 지리산 하동 쌍계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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