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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다솔사

여행/사찰

by MasterHwan[마스터환] 2022. 11. 1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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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스터환입니다. 최근 진주와 사천에 자주 가게 되네요. 사실 진주와 사천은 외가댁이 있어 저에게는 편안한 안식처 같은 곳입니다. 최근 사천에 갔다가 곤양에 위치한 경남에서 가장오래된 사찰 다솔사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어릴때 부터 다솔사라는 사찰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직접 간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다솔사
천 오백년 고찰, 봉명산 다솔사
사천 다솔사 경내지도


조계종 제 14교구 범아사의 말사인 다솔사는 경남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절 입니다. 다솔사의 역사는 '곤양 지리산 영악사 중건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쪽 바다에 닿아 있는 곤명은 그 진산을 지리산으로 하는데, 수백 리 흘러 곤명 북쪽에 봉우리를 맺은 봉명산에 절을 세웠다. 문창후 최치원과 지영, 능민 두 스님이 거닐며 즐기던 곳이다. 신라 지증왕 4년 계미년(503년)에 절의 역사가 시작 되었으며 이름을 영악사라 했다. 선덕여왕 5년 병신년(636년) 에 자장법사가 중창하여 다솔사라 했다. (중략)

다솔사는 '많은 군사를 거느린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보면 대장군이 나오는 터입니다. 아래 소나무 길을 통해 걸어 올라오다 보면 오른편에 어금혈 봉표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는 어명으로 다솔사에 묘자리르 금지한다느는 의미입니다. 1890년 당시 지역 유지가 이곳이 풍수지리적으로 좋다는 말을 듣고 무덤을 만들려 하자 스님과 지역민들이 반대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에 고종이 그 뜻을 받아들여 이곳에 표지석을 세웠습니다.

다솔사를 포함한 봉명산 일대에는 많은 인재가 나고 거쳐 갔습니다. 특히 불의에 맞서 일본에 항거한 승려와 지식인이 이곳을 본거리 삼아 항일 활동을 펼쳤습니다. 임진왜란 때 사선대사와 사명대사가 다솔사를 승병기지 삼아 의병활동을 한 것이 유명합니다. 적멸보궁 오른쪽에 위치한 응진전은 만해 한용운 스님이 머물며 수도한 곳입니다. 만해 뿐만 아니라 김법린(1899년 ~ 1964년)과 최범술(1904년 ~ 1979년)이 이 곳을 기점으로 독립운동과 교육활동을 활발하게 펼쳤습니다. 소설가 김동리는 1935년부터 1940년까지 적멸보궁 아래 안심료에 머물며 야학을 세워 농촌 게몽운동을 펼쳤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그리고 다솔사는 차(茶) 나무의 성지이며 한국 차도(茶道)문화의 성지입니다.

다솔사는 503년(지증왕 4년)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사천시를 대표하는 유산인 다솔사보안암석굴(유형문화재 제 39호), 다솔사대양루(유형문화재 제 83호), 다솔사극락전(문화재자료 제 148호), 다솔사응진전(문화재자료 제 149호) 등이 있습니다. 또한 자장율사, 원효의상, 최치원, 도선국사, 나옹국사, 서산, 사명 등 역사적인 인물들이 함께 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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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근대사 사상적 발원지 다솔사


1,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다솔사는 일제강점기에 한용운 스님이 수도하던 곳으로 독림선언서 공약삼장을 작성 및 항일기지의 역할을 했으며 소설가 김동리가 한동안 머물며 문학의 거작 <등신불>을 집필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동양철학자-한학자인 김범부가 항일투쟁 거점으로 삼으며 사상 연구를 하였습니다. 다솔사의 주지였던 효당 최범술은 독립지하조직 본산이 된 비밀결사 '만당'을 창당하는 등 다솔사는 긴 역사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은 곳이기도 합니다.

대양루 왼편 에 있는 소원을 담아 쌓은 돌탑
다솔사의 문화재

1. 다솔사 적멸보궁

본래는 대웅전 이었으나, 1979년 후불탱화 속에서 불사리 108과가 나오자 대웅전을 적멸보궁으로 증개축한 뒤 불사리를 적멸보궁에 모셨습니다. 다솔사의 적멸보궁 안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열반에 들기 직전의 부처님 모습인 와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와불상이 모셔져 있는 다솔사 적멸보궁

2. 다솔사 응진전(경상남도 문화제자료 제 149호)

사천 다솔사 응진전은 응진을 모신 건물입니다. 응진은 다른말로 나한, 아라한으로 불리며 부처를 따르는 수행자를 가르킵니다. 보통 규모가 작은 응진전에는 나한 16명을 모시고, 규모가 큰 응진전에는 나한 500명을 모십니다. 다솔사 응진전에는 나한 16명을 모셨습니다.
이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작고 아담합니다. 지붕은 3개의 도리(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어 그 위에 서까래를 놓은 나무)로 짜 맞추었습니다. 기둥 위에는 새 머리와 날개 모양으로 조각 2개를 아래위로 짜고, 기둥 사이에는 꽃 모양으로 조각한 판재(널빤지로 된 제목)로 지붕을 받치고 있어 작지만 화려한 모습니다.
건물 안에는 마룻바닥을 깔고, 천장은 네모진 틀 안에 판재를 끼우고 화려한 꽃 모양의 무늬를 새겼습니다. 규모는 작고 소박하지만 세부적으로 장식을 잘 다듬었고, 내부를 화려하게 꾸몄기에 가치가 높습니다.
또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머물러 수행하던 곳입니다.

16나한을 모시고 만해 한용운 스님이 수행한 다솔사 응진전

3. 다솔사 극락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사천 다솔사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곳입니다. 아미타불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고 하는 서방정토 세계의 부처이며 무량불이라고도 합니다. 사천 다솔사 극락전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590년 ~ 658년)가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탔습니다. 숙종 6년(1680년)에 새로 지었으며, 이후 다시 짓기와 화재가 거듭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15년에 복원하였고 2007년에 해체하여 수리하였습니다.
건각 내부에는 아미타불 좌상을 모셨으며, 칠성신과 산신 등의 불화가 있고, 건물 외벽에는 불교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건물 앞면 좌우 칸의 창호와 벽체 그리고 난간 형태의 머름(바람을 막거나 모양을 내기 위하여 미닫이 문지방 아래나 벽 아래 중방에 대는 널조각) 등의 설치가 특이합니다.

아미타불 좌상을 모신 다솔사 극락전

4. 다솔사 대양루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39호)


사천 다솔사 대양루는 영조 34년(1758년)에 지은 건물입니다. 대양루는 다솔사에서 중심이 되는 건물인 적멸보궁과 마주해 있고 대양루 좌우에는 스님들이 머물면서 공부하는 법당과 더불어 'ㅁ' 자 모양의 마당이 있습니다
대양루는 다솔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건물이며 화려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건물로서 격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앞면 5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건물의 모서리에 추미가 없이 용마루까지 옆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의 모습에 기둥 위에만 새 부리 모양의 재료를 써서 지붕을 받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누각 마루 아래의 기둥들은 굵고 뒤틀어진 모양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여 자연스러우며, 마루 위의 기둥은 잘 다듬어 단정합니다. 대양루의 앞, 뒤 기둥머리에는 길고 굵은 대들보 하나만 세워 여러 개의 기둥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마루 안의 쓰임새가 많으며 건축물의 구조적 가치가 돋보입니다.
중층누각 구조로 당당함이 느껴지는 보기드문 방풍판을 단 18세기 대표적인 건축양식 입니다.

다솔사 대양루 앞면(좌)과 다솔사 대양루 뒷면(우)

5. 부처님 사리탑

대웅전 후불탱화 속에서 나온 불사리 108과를 모신 부터님사리탑으로 사리탑을 돌며 소원을 기원할 수 있습니다. 적멸보궁 바로 뒷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적멸보궁 바로 뒷편에 위치한 부처님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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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솔사 중건비

숙종 30년(1704년)에 세워진 다솔사 중건비 입니다. 거북이 몸통같이 생긴 자연석 위에 비신과 이수가 차례로 놓여 있는 이 비석은 "조선국 경상 우도 곤양군 북지리산 영악산 중건비"라는 비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다솔사 중건비 핵심부분을 번역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남쪽 바다에 닿아있는 곤명은 그 진산을 지리산으로 하는데 수백리 흘러 곤명 북쪽에 봉우리를 맺은 봉명산에 절을 세웠다.
2. 문창후 최치원과 지영, 능민 두 스님이 거닐며 즐기던 곳이다
3. 신라 지중왕 4년 계미년(503년)에 절의 역사가 시작 되었으며 이름을 영악사라 하였다.
4. 선덕여왕 4년 병신년(636년)에 자장법사가 중창하여 다솔사라 하였다.
5. 문무왕 16년 병자년(676년) 원교대사 의상에 의하여 삼창이 이루어졌는데, 이름을 영봉사라 하였다.
6. 신라 경문왕, 헌강왕 무렵 (875년 전후) 요공대사 도선에 의해 사창이 이루어지면서 다시 지금의 이름(타솔사)이 되었다.
7. 그 후 고려 공민왕(1351년 ~ 1374년)의 왕사 보세존자 나홍혜근이 증축하여 크게 만들었다. 이렇게 다섯번을 전해 오다가 임진왜란 때 반이 불타고 말았다.
8. 그로부터 165년이 지난 숙중 12년 병인년(1686년)에 신양자 영일, 곤봉자 혜능, 주지 자청, 원기 등 네 며의 도인이 증건하였다.
9. 비석을 세운 연도는 1704년 (숙종 30년)이다.
* 임진왜란, 1914년, 6.25 한국전쟁을 거치며 화재를 만나 소실되기도 했다. 현재 19세기 이후로 다솔사란 이름이 사용되었다.

곤양 지리산 영악사(다솔사) 중건비

다솔사 경내 시설 및 풍경

1. 차밭

적멸보궁 뒷편에는 300년이 넘는 차나무와 10,000평이 넘는 차밭이 있습니다.

오른편 건물(적멸보궁)뒤가 차밭
다솔사 산신각
봉명산 산책로 주변에 있는 산책로

그럼 이것으로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다솔사에 대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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