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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 효성 - LG 창업가가 함께 심은 부자소나무가 있는 (구) 지수초등학교

여행/Landmark

by MasterHwan[마스터환] 2022. 12. 25.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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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스터환입니다. 지난 10월 진주유등축제를 구경하고 외가댁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일찍 1박2일에 나왔던 (구) 지수초등학교에 다녀왔습니다. 1박2일에선 삼성 - 효성 - LG 창업가가 함께 심은 부자소나무만 소개 되어 부자소나무만 구경하고 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방문해 보니 부자소나무 외에 부자소나무 뒷편에는 K-기업가 정신센터가 었고, 부자소나무 오른편에는 카페와 기업가정신 전문 도서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자소나무를 촬영하고 K-기업가정신을 둘러본 후 기업가정신 전문도서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삼성 - 효성 - LG 창업가가 함께 심은 부자소나무가 있는 (구) 지수초등학교

 

부자소나무

 

K-기업가정신 센터 건물 바로 앞에는 부자소나무가 있습니다.

 

부자소나무는 1921년 지수초등학교가 지수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할 당시 삼성창업주 이병철, LG창업주 구인회, 효성 창업주 조홍제가 함께 심고 가꾸었다고 전해 집니다. 이 소나무는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 3명이 함께 심고 가꾼 소나무로서 후대 사람들이 부자소나무라 이름하였으며, 오늘날은 부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꼭 찍고가는 명소 중의 명소 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 3명이 함께 심고 가꾼 부자소나무

저도 부자소나무 앞에서 아신미디어가 번창하길 빌었습니다. 소원을 빌고 난 후 부자소나무 뒷편에 있는 K- 기업가정신 센터 건물안으로 들어갔습니다.

 

K-기업가정신 센터

 

K-기업가정신 센터 건물은 1,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은 전시실 2층은 교육장으로 활용 되고 있습니다.

 

부자소나무 뒷편에 있는 K-기업가정신 센터 건물 입구

K-기업가정신 센터 1층은 부자마을 승산마을에 대한 전시관과 1900년 이후 우리나라 창업 역사가 소개된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자마을 승산마을에 대한 전시관은 부자마을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삼성 창업가 이병철 회장 생가와 효성 창업가 조홍제 생가, LG 창업가 구인회 회장의 생가 및 지수초등학교를 졸업한 기업가들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유명 맛집 음식을 집에서... 아신미디어

나는 기업경영의 80%를 인재양성에 쏟아왔다고 말씀하신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1910 - 1987)

 

(좌) 삼성창업주 호암 이병철 (우) 삼성 이병철 회장 생가

이병철 회장은 새로운 사업기회를 끊임없이 찾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업을 일으키는 개척정신은 물론이고, 사업보국이나 기업이윤의 사회적 환원을 통한 사회적 책입 수행은 남명의 의(義)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의 사람에 대한 믿음, 확신을 통한 결단과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행동으로 나타난 의(義)라 할 수 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평소 "자연이나 모든 세상사와 마찬가지로 기업경영에도 이치가 있고 이치에 맞도록 해야 한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통찰력이 뛰어났으며 경영에 있어 순리를 따르는 것을 중요시하였습니다

 

삼성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 연혁

 

1910년 경남 의령 출생 1961년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경련) 창설, 초대회장
1922년 3월 지수보통학교 3년 편입 1963년 동방생명, 신세계백화점 인수
1922년 9월 서울 수송공립보통학교 편입 1964년 한국비료공업(현 롯데정밀화학) 설립
1925년 중동학교 속성과 편입 1965년 삼성문화재단, 중앙일보 설립
1926년 중동중학교 본과 입학 1966년 중앙개발, 고려병원 설립
1929년 중동중학교 4년 수료 1968년 중앙일보 회장
1930년 일본 와세다대학 입학(중퇴) 1969년 삼성전자공업 설립
1936년 협동정미소 사업 시작 / 마산일출자동차회사 인수 후 운송회사 경영 / 은행융자 받아 토지투자 사업 시작
1938년 삼성상회 설립 1974년 삼성석유화학, 삼성중공업 설립
1942년 조선양조 인수 1977년 삼성조선, 삼성정밀 설립
1948년 삼성물산공사 설립(조홍제 공동창업) 1978년 삼성반도체 설립
1951년 삼성물산주식회사 설립 (조홍제, 허정구 공동 창업) 1982년 삼성종합연수개원, 호암미술관 개관
1953년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 설립 1984년 삼성 휴렛팩커드, 삼성의료기기 설립
1954년 제일모직주식회사 설립 1985년 삼성데이타시스템 설립
1958년 안국화재 인수 1987년 삼성종합기술원개원

 

신뢰가 성공을 낳는다고 말씀 하신 LG 창업주 연암 구인회 (1907 ~ 1969)

 

(좌) LG 창업주 연암 구인회 (우) LG 구인회 회장 생가

구인회 회장은 실천주의를 강조하였습니다. 실천주의는 남명 선생의 '의(義)'의 정수입니다. 구인회 회장의 인화경영과 정도경영 역시 남명의 경의사상의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도의 길을 간다는 것은 순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구인회 회장은 기술개발과 품질경영을 대단히 중요시하였습니다 그는 기술혁신만이 기업이 살길이라고 강조하며 기업경영에서 기술과 과학을 중요시했습니다. 이러한 기술을 중요시하는 실용주의적 사상은 남명 선생의 '의(義)' 와 맞닿아 있습니다.

 

LG 창업주 연암 구인회 연혁

 

1907년 출생 1952년 사단법인 대한화장품협회 이사장
1921년 지수보통학교 입학 1953년 락희산업주식회사(LG 상사) 설립
1924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입학 1955년 럭키치약 생산
1929년 지수협동조합 이사장 취임 1956년 한국무역협회 이사
대한합성수지공업협회 이사장
1931년 구인회 상점 개점 1959년 금성사(현, LG전자) 설립
락희유지공업주식회사 설립
1940년 '주식회사 구인회상회'로 변경 1962년 한국케이블공업사(현, LS전선) 설립
1945년 무역업 허가 제1호 업체 조선흥업사 설립 1968년 락희화학 공업사 회장
1947년 럭키크림 생산
락희로 상호 결정
락회화학공업사 (현, LG화학 설립)
1969년 호남정유(현, GS칼텍스) 여수공장 준공
금성통신주식회사 설립
금성전선주식회사 설립
연암문화재단 설립
럭키개발주식회사(GS 건설) 설립
락희화학 매출 100억원 달성 최초 기업 공개
1949년 화장품연구소 설립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효성 창업주 만우 조홍제 (1906년 ~ 1984년)

 

(좌) 효성 창업주 만우 조홍제  (우) 효성 창업주 조홍제 생가

조홍제 회장은 이병철 회장과의 결별 후 56세라는 늦은 나이에 새롭게 사업을 다시 시작하여 짧은 기감에 사업을 성공시켰습니다. 이러한 그의 자질은 유교적 생활을 통해 쌓은 통찰력과 인내력에서 나온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홍제 회장은 삼성물산을 통해 이병철 회장과 같이 이루어 온 많은 것들을 넘겨주면서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는 유학의 핵심인 '경(敬)'을 실천하였습니다. 특히, 조홍제 회장이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시 한 의로운 이윤 추구와 국리민복은 남명의 우국애민과 구국정신의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효성 창업주 조홍제 연혁

 

1906년 경상남도 함안 출생 1962년 효성물산 설립(이병철과 사업 이별)
조선제분 공장 설립
1923년 중등학교 초등과 입학 1963년 한국타이어, 대전피혁 인수
1925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입학 1966년 동양나이론주식회사 설립
1926년 6.10 만세 운동에 주동자로 지목돼 퇴학 1966년 울산 타이어코드공장 완공
1928년 일본 호세이대학 입학 1970년 한일나이론 인수 합병
1935년 호세이대학 경제학부 졸업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 기술연구소 설립
1942년 군북산업조합 인수, 군북산업주식회사 설립 1973년 동양폴리에스터 설립
동양염공설립
1948년 삼성물산공사 설립
(이벼철 공동창업, 부사장 취임)
1975년 동성, 효성개발 설립
한영공업(현, 효성중공업 인수)
1953년 제일제당 설립(이병철 공동창업) 1976년 효성그룹 회장 사퇴, 금탄산업훈장 수훈
1954년 제일모직 설립(이병철 공동창업) 1979년 24개 개열사로 국내 5대 그룹 성장

 

재산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잠시 보관하는 것이다라고 말씀 하신 GS 창업주 효주 허만정 (1897년 ~ 1952년)

 

GS 창업주 효주 허만정

효주 허만정 선생은 22세 젊은 나이에 서울에서 3.1 만세 운동을 경험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됩니다. 이후 민족정신을 교육할 목적으로 현재 진주 여고인 일신 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그의 부친과 나눴다는 대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는 백정들의 신분 해방 운동인 '형평사 운동'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독립운동 단체인 백산상회에 독립자금을 기부 하기도 하였습니다. 형평사 운동의 최우선 목표는 백정들의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철폐하고 인간으로서의 평등한 권리와 존업승을 갖도록 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민족 교육과 신분 평등, 국권 회복등에 힘을 쓴 그의 부자정신은 지신정 허준 선생과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사상의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GS 창업주 허만정 연혁

 

1897년 경남 진주 지수 출생 1921년 지수공립보통학교 부지제공 후원
1914년 백산상회 설립(발기인) 1923년 진주형평운동후원
1919년 백산무역주식회사 설립(대주주) 1925년 진주일신고등보통학교(진주연고) 설립 주도
1920년 주일상회주식회사 설립(발기인, 취체역) 1928년 중외일보사 부사장
1920년 협성상회주식회사 설립(발기인, 감사)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LG화학) 공동 설립
1920년 경남십삼은행 설립(발기인)  

 

대한민국 기업가의 산실 지수초등학교

 

1921년 5월 9일에 개교한 지수초등학교는 개교 이래 국내 유수 기업의 기업가들이 배출된 학교로 유명합니다. 특히 금성(LG, GS) 연암 구인회, 삼성 호암 이병철 창업주가 다녔던 곳으로 의령 출신 이병철 창업주가 누님댁이 있는 승산마을로 유학을 왔고, 함안 출신 조홍제 창업주는 이 학교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친구를 만나기 위해 자주 방문했다고 합니다. 지수초등학교 교정에는 구인회, 이병철, 조홍제 창업즈가 심었다고 전하는 부자 소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2018년 7월 10일 한국경영학회에서 진주시를 "대한민국 기업가정신 수도"로 선포하여 지수초등학교와 승산부자마을 출신 기업가들이 전국적인 관심과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정문 왼편에 있는 지수초등학교 100주년 기념비

지수초등학교 연혁

 

1921년 5월 09일 지수 공립 보통 학교 개교 2000년 2월 10일 성남관 개관(LG 구자경 회장 기증)
1950년 4월 01일 지수초등학교 용봉학교(송정교) 인가 2009년 3월 01일 지수-송정, 지수초등학교로 통폐합
1955년 4월 20일 송정초등학교 승격 2010년 2월 01일 현 위치(구 송정초등학교)로 이전
1981년 3월 09일 병설유치원 개원 2022년 3월 29일 K-기업가정신센터 설립(구, 지수초등학교)

 

지수초등학교 출신 기업가들

 

지수초등하교 출신 기업가듷

기수 성명 기업명 기수 성명 기업명
제 1회 구인회 럭키 금성 그룹 창업주(현 LG/GS그룹) (자) 구자경 제 32회 허승효 알토전기 회장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허수창 오원물산 (주) 회장
제 3회 구철회 LIG 그룹 창업주 허창선 (주) 명성교통 회장
제 5회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 (자) 허남각, 허동수, 허광수 제 34회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
제 7회 허학구 정화금속 창업주, LG 전선 부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 대한골프협회 회장
제 11회 구정회 금성사, 금성전기 사장 제 37회 조권제 지수산업 회장
허을용 우성산업 (주) 창업주 (자) 허인석 이병구 성현테크 회장
제 12회 구태회 LS 그룹 창업주 제 38회 허승조 GS 리테일 부회장
제 13회 허준구 GS 그룹 창업주 (자) 허창수, 허태수 제 39회 이성범 (주) 아이콘 회장
허옥구 부산 펩시콜라 대표 (자) 허남설 제 40회 이수환 (주) 우성전장 회장
제 14회 구자경 LG 그룹 명예회장 허장욱 경남환경개발 회장
제 15회 구평회 E1 명예회장, 한국무역협회장 제 41회 허두령 덕성산업 회장
제 17회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 제 42회 유해성 장한기술 (주) 대표이사
제 18회 허신구 GS 리테일 명예회장 구행회 (주)영신엔프라 대표이사
제 19회 허셩구 대성사 회장 (자) 허부걸 제 43회 허익창 E&W 산업주식회사(무역업) | 본사 일본
제 22회 허신 파로마 가구 회장 유현구 KLB 대표이사
제 24회 유영수 (주) 고려공산 회장 황차용 대아테크 대표이사
제 25회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 제 44회 이균필 (주) 삼정 C.T 대표이사
제 26회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제 46회 허기영 SJ 테크원 회장
이병인 삼중건축설계사무소 회장 제 49회 조행래 (주) 금강 DNC 대표이사
제 28회 최종락 (주) 국제플랜트 회장 장동명 장안기업 (주) 대표이사
구자정 보람은행장 제 52회 이윤수 (사) 한국수산업경영인협회장
제 30회 구자신 쿠쿠전자 회장  
허동수 GS 칼텍스 회장
구산회 (주) 성우정공 회장

부자마을 승산마을에 대한 전시관을 둘러 본 후 1900년 이후 우리나라 창업 역사가 소개된 전시관을 관람했습니다. 이 곳에는 연도별로 유명한 기업가들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1) 1870 ~ 1910년

1870년 ~ 1910년 설립된 기업들

-1896년

보부상의 정신을 이은 '두산' 박승직 상점 (창업자 : 박승직)

박승직은 인화, 정직, 신용, 근검절약을 신념으로 삼고 기업을 설립하여 사람 중심의 가족주의를 기초로 신용과 정직이라는 고객 관리에 힘썼다. 그의 좌우명 '근자성공 : 부지런한 자가 성공한다.'를 마음에 새겨 성실의 기업가 정신으로 기업을 이끌었다.

- 1897년

궁중의 비방의 탄생한 '활명수' 동화약방 (창업자 : 민강)

우리의 궁중 비방에 서양의학을 혼합해 호라명수가 탄생했다. 우리나라 제약업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는 동화는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예리함이 쇠도 자를 수 있다. 나라가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국민이 평안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창업자 민강 선생의 '좋은 약을 만들어 사회에 봉사한다.'는 제약보국의 기업가 정신이 오랜 시간 동안 국민 소화제로 사랑받을 수 있는 장수비결의 성공전략이 되었다.

- 1898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회사 한성전기회사 (공동창업 : 조선 황실, 콜브란)

우리나라의 최초 전기회사는 1898년 서울에 설립되었다. 주요 사업은 전차와 전등시설 운영이었고 전화사업 독점권도 가지고 있었으나 별다른 활동 없이 이권 수호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 회사는 대한제국의 자주성 없는 자세로 인하여 국내의 이권들이 외국에 양되는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 1907년

육의전 상인이 설립한 첫 주식회 백윤수 상점 (창업자 : 백윤수)

종로 육의전에서 조상 대대로 견직물 시전를 경영해 온 백윤수는 화폐 개혁의 고비를 힘겹게 넘어서며 1907년에는 전통적인 시전 상인의 모습에서 탈피한 기업 형태의 '백윤수 상점'을 열었다. 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빠른 판단력과 민첩한 적능력으로 위기를 바꾼것이다. 1916년 대창 무역을 세워 주식회사 형태로 무역업을 하였다.

2) 1910년 ~ 1945년

 

일제 강점기(식민기업과 민족기업의 자본형성)

일제강점기는 역사적으로 아픔이 있는 시기였지만 민족계 자본 기업의 측면에서는 태동기이기도 합니다. 1910년 이후 민족계 기업 설립운동은 일제의 방해 속에서도 꾸준히 전개되면서 대기업으로 거듭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때 삼앵그룹과 화신그룹 등이 형성되었고, 연암 구인회 회장이나 호암 이병철 회장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우리 경제는 일제의 수탈과 자원, 식량 공급지 역할에 그치는 측면이 많았습니다. 이 시기에는 공업과 상업이 주를 이루었고 양조업이나 방직업, 정미업 등 경공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또한 일제의 식민지를 겪고 있던 상황으로 많은 기업가들이 민족계 자본 기업을 세웠고 기업을 경영하며 독립자금을 마련해 자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민족기업이 백산 안희제 선생이 세운 '백산상회'로 독립운동 단체의 연락 및 자금 공급 등의 활동을 펼쳤습니다.

1910년 ~ 1945년 설립된 기업들
캘린더 기반 각종 축제, 행사, 강연, 공연, 각종 생활정보, 창업, 취업정보 플랫폼 k-big

- 1926년

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서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사회에 환원한다. 유한양행 (창업자 : 유일환)

유일환은 우리나라의 '질병, 기아, 무지' 3대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미국에서의 성공한 삶을 두고 유한양앵을 세웠다

그는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며 사회와 종업원의 것이다.'를 강조하며 사람을 중시하였고 좋은 상품으로 경쟁력 있는 회사를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의지로 기업을 이끌었다

- 1931년

신뢰가 성공을 낳는다 구인회 상점 (창업자 : 구인회)

구인회 회장은 "한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며 자식들에게 늘 인화를 강조했다고 한다. 이런 집안 가풍이 LG 인화경영의 뿌리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1938년

세상은 우연이 없다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하라 삼성상회 (창업자 : 이병철)

항상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되고자 했던 이병철은 사업보국의 경영사상으로 삼성 물산과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을 설립해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에 생필품을 공급하며 닫시 일으킬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항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사람에 대한 신뢰를 중시했고 이치와 순리를 따르 경영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1939년

일하자. 더욱 일하자. 한없이 일하자.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삼공유지랍자회사 (창업자 : 김성곤)

김성곤은 항일운동을 주동하다 퇴학을 당할 정도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신념이 남달랐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그는 기업가로서 나라를 위해 공헌할 방법을 찾아다녔고, 국가 경제 개발의 중요한 밑바탕이 되는 것을 목표로 1962년 쌍용양회공업주식회사를 설랍하여 기업을 성장시켰다.

- 1940년

이봐 해 봤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아도서비스 자동차 수리공장 (창업자 : 정주영)

정주영은 맨손으로 현대그룹을 일궈낸 신화적 기업가다. 확고한 신념과 노력의 화신으로 알려진 그는 무슨 일을 시작하든지 된다는 확신과 자시감 외 불안은 단 1%도 갖지 않았다. '길을 모르면 길을 찾고 길이 없으면 길을 닦으라.'라며 누구보다 실턴을 중요시 생각했다. 그런 그의 실천력은 후배 기업가들에게 끊임없이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을 보여주었다.

- 1942년

기업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이 일의 성패를 좌우한다. 군북산업주식회사 (창업자 : 조홍제)

조홍제는 1942년 군북산업주식회사를 시작으로 기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인간존중의 정신을 위기 극복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그는 1960년, 이병철과 함께 만들었던 삼성물산을 양보해야 할 때에도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했다. 그 이후 사업의 성장성을 알아보는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동양나일론을 서립(1966)하여 현재의 효성 그룸을 일구어 냈다.

3) 1945년 ~ 1960년

 

기업태동기

광복 후 대한민국 기업의 태동

1945년 8월 35년간의 식민지 아픔은 끝이 났으나 사회적, 경제적으로는 외국의 원존에 의존해야만 하는 허약한 경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더하여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남한과 북한이 분단되었고 국민들에게 큰 시련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 시기 한국 경제는 심각한 물자 부족으로 인해 물가가 30배로 뛰는 등 극심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기업들이 있습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탄생했다고 하여 '해방둥이 기업'이라 불리는 이 기업들의 특징은 식품, 의약품, 물류, 화장품 등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분야로 사업을 시작했다는 점 입니다. 대표 회사로 한진, 아모레퍼시픽, 대웅제약 등이 있습니다.

50년대에는 60년댇 우리나라 공업화의 기반을 다진 재계의 태동기였습니다. 면방과 소모방의 화학섬유공업의  발달과 제분, 제당, 주정공업과 같은 식료가공업의 발흥을 낳았습니다. 실제로 50년대 말 재계 1위였던 삼양사는 울산에 제당 공장을 짓고 1961년 '삼양설탕'을 출시해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수산업, 화학섬유 산업에도 진출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했습니다.

1945년 ~ 1960년 설립된 기업들

-1945년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창조해 세계와 소통하겠다 태평양화학공업사 (창업자 : 서성환)

서성환은 평소 '우리 회사의 모태는 나의 어머니다'라며 말했고, 자신의 어머니께 '제조법이 아닌 제조에 임핳는 자세를 배웠다'라며 이를 임직원들과 가족에게 가르쳤다. 그는 모친에게 배운 '사람을 대하는 의'와 '고객의 믿음을 지키는 신'을 그리고 '사업이 번창해도 허세를 부리지 말라는 실'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기업가정신으로 아모레퍼시픽을 이끌었다.

사람 우선, 국익 우선, 한진상사 (창업자 조종훈)

한민족의 전진이라는 뜻을 가진 한진그룹은 인재양성솨 수송보국이라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항상 국익을 먼저 생각하며 기업을 이끌고, 모방이나 경쟁이 아닌 남이 하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에 큰 뜻을 두고 학교 교육 지원과 직원들을 위한 사내 산업대학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1946년

세상에 구한 것은 물질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있다. 광주여객자동차주식회사 (창업자 : 박인천)

식민지 하에서 가난한 청년 시절을 보낸 박인천은 빈곤으로부터 민족 구원의 경제철학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공익을 우선시하였고, 정도경영의 모범을 보여줬다. 세계 일류의 가치창출, 이웃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을 지향하며 민족 사랑의 기업가정신을 실천하는 기업가로서 역할을 다해 오늘날의 금호를 만들어냈다.

-1951년

기업은 의를 바탕으로 이를 취하라 (주) 두산상회 (창업자 : 박두병)

박두병은 오늘날의 두산이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진 실질적 창업자이다. 두(斗), 산(山)은 '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 올려 산 같이 커져라.' 라는 의미로 아버지인 박승직이 지어주었다. 이후 순리대로 시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그의 신념이 되었고, 정도경영과 내실경영이 두산의 기업철학이 되었다.

-1952년

나는 해방된 조국의 화약계를 지키는 등대수가 되겠다. 한국화약 (창업자 : 김종희)

김종희는 '리더는 인간성 중시의 리더십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신의 신념을 강조하며 인간성과 사업보국에 힘을 실었다. 그는 화약이라는 분야가 가진 위험성을 염려하며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신뢰와 인간성을 누구보다 중요시했다.

- 1953년

기업은 나라의 백년대계에 보댐이 되어야 한다. 선경직물주식회사 (창업자 : 최종건)

최종건은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으로 섬유사업, 석유화학공업, 석유정제사업까지 일괄 생산체제를 갖춰야 안정적이고 저렴한 생산비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실천하였다. 기술을 통해 나라에 이바지하겠다는 사업보국과 그의 도전정신이 오늘날 SK 그룹의 토대가 되었다.

4) 1960 ~ 1970

 

기업성장기

국가경제성장과 기업의 성장

1960 ~ 70년대는 많은 기업들이 성장을 이룬 시기입니다. 3차에 걸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진행되면서 외형적 경젱성장과 공업화의 목표가 될성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 시기에는 정부에 의한 수출 드라이버 정책이 강렦하게 추진되면서 교역의 규모가 확대되고 고도 경제성장을 위한 기반이 마련됩니다. 그러던 중 1970년대 초 미국 경제의 침체, 제 1차 오일쇼크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세계적 경제 위기 상황에도 우리나라 수출 드라이버 정책은 성공가도를 달리며 중화학공업 부문의 수출이 증가하고 산업 구조가 고도화 되었습니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입니다. 더불어 무역입국이라는 국가 목표롤 조기에 달성하게 되면서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대우, 효성, 롯데, SK, 두산 그룹 등이 대기업 집단의 면모를 갖춘 시기도 1970년대 입니다.

1960년 ~ 1970년 설립된 기업들

- 1967년

창업은 창조, 역경을 넘는 건 도전, 일하는 방식은 열정 롯데제과 (창업자 : 신격호)

자수성가형 기업가로 불리는 신격호는 메모광이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각 계열사의 브리핑을 들을 때면 항상 메모를 하고 철저하게 분석했다고 한다. 그는 본인이 가진 안목과 철저한 분석력으로 사업을 넓혀 갔고, 기업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고자 노력했다.

- 1967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대우실업 (창업자 : 김우중)

김우중은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지론 아래 남들보다 앞서 세계 시장에 진출하였다.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산업을 키웠고, 세계경영을 통해 돌파구를 만들었다. 그는 항상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 1968

제철보국, 그리고 우향우 정신. 포항종합제철 (창업자 : 박태준)

우향우 정신으로 불리는 박태준의 기업가정신은 '포항제철소 건설에 죽기 살기로 달려들고, 실패하면 바다에 빠져 죽자'라는 강한 결의를 의미한다. 그는 포항제철을 통해 나라에 보답하자는 '제철보국'을 목표로 세우고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이 사익을 채워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실천하며 마지막까지 청렴한 삶을 살았다.

5) 1980 ~ 1990

 

기업성숙기 | 벤처태동기

기업의 세계화와 IMF의 위기

1978년 발생한 2차 석유파동으로 중화학공업이 발전하면서 석유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고, 인플레이션과 자본 분배 문제 등으로 한국 경제 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사태로 불안해진 정국은 박정희 정권 붕괴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정군을 인계받은 전두환 정권은 석유 비축 조치와 금융 긴축 정책을 시행하여 1983년 이후에 소비자 물가가 안정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997년 IMF를 겪으면서 많은 기업들이 위기를 맞았지만 삼성, 효성, LG 등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기업을 더욱 성장시켜 도약했습니다.

1980년대 벤처기업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벤처 1세대, 벤처산업의 태동기라고도 합니다. 1980년 이용태가 창업한 삼보컴퓨터를 시작으로 많은 벤처 기업들이 설립되었습니다. 1980 ~ 90년대가 기존 기업에게는 더욱 몸집을 키우면서 성장하는 시기였다면, 새로운 산업으로 첫 시작을 알리던 벤처기업은 태동기로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시기였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벤처 1세대 기업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이를 기반으로 많은 벤처 기업들이 탄생한 것입니다.

1980년 ~ 1990년 설립된 기업들

- 1980년

컴퓨터 잘 만드는 만큼 인성을 길러야 한다. 삼보컴퓨터 (창업자 : 이용태)

삼보컴퓨터는 우리나라에 개인용 컴퓨터를 처음으로 상용화한 기업이다. 이를 설립한 이용태는 재벌 기업이 득세하는 한국의 기업 생태계에서 40개가 넘는 벤처기업을 설립하거나 투자하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변화 무쌍한 IT분야에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열정으로 후대 기업가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 1981년

생각하는 대로 자신을 갖고 두려워 하지 말고 행동하라 큐닉스 (창업자 : 이범천)

이범천은 30대 초반에 교수직을 내려놓고 회사를 창업했다. 큐닉스컴퓨터는 1년 만에 흑자를 기록하면서 자리 잡았고, 빌게이츠와 합작한 한국 마이크로소프트를 경영하면서 창업 15년만에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사라졌지만 1세대 벤처기업인들을 발굴한 그는 벤처 선구자로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 1983년

1등 보다는 1호가 되자 비트컴 (창업자 : 조현정)

1983년 조현정은 의료분야에 IT가 필요하고 의료지식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라는 점에 매력을 느껴 의료 서비스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 하였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도전 정신을 가진 그는 1등 보다는 1호를 지향한다는 독특한 발상으로 대학생 1호 벤처, SW 1호 벤처, 테헤란밸리 1호라는 벤처의 명성을 얻었다.

- 1985년

기술에 의한 세계 도전, 도전 정신만이 살길 메디슨 (창업자 : 이민화)

이민화는 시대를 앞서보고 도전과 학습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설립한 메디슨은 기업가를 키우는 기업으로 개인은 도전과 실패를 통해 학습할 수 있도록 하고, 조직은 가치를 발견해 낼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 1988년

기술을 통해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지키자 터보테크(현 블루카이트, 창업자 : 장흥순)

장흥순은 자신의 기술로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기업을 성장시켰다. 그는 비교적 산업 기반이 취약한 메커트로닉스산업, 그 중에서 누구도 가망 없다던 CNC장치를 통해 성공하여 벤처기업인들 사이에서도 진정한 벤처기업인으로 평가받았다.

- 1991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도전의식만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 핸디소프트 (창업자 : 안영경)

핸디소프트는 약 20년 동안 국내 SW 업계를 대표한 1세대 기업이다. 업무 프로세스관리, 그룹웨어 및 기업지식포털 등을 개발해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경영하며 세계와 견주어 왔다.

6) 1990 ~ 2000

 

벤처기업 성장기

국가 경제의 새로운 동력, 벤처기업

2000년대는 벤처 2세대로 불리며 인터넷을 활용한 기업들이 많이 등장했고, 2010년대는 벤처 3세대로 플랫폼을 활용한 기업들이 많이 등장 하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벤터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수립되면서 그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이 시기 벤처 1세대 기업들은 급성장 하였으나 IT 버블의 붕괴로 벤처 거품이란 말만 남기고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였습니다. 정보통신산업과 자동차, 선박산업 등으로 경제가 회복되었지만 또다시 2007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위기를 맞게 됩니다. 하지만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벤터기업들은 지금까지도 계속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당시 설럽되었던 네이버, 엔씨소프트, 카카오 등이 벤처기업으로 급성장했고 현재는 모두 대기업 집단에 합류했습니다.

1990년 ~ 2000년 설립된 기업들

- 1994년

수없이 망했어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했다 넥슨컴퓨터 (창업자 : 김정주)

학창 시절 공부보다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일을 하며 꿈을 키운 김정주는 기업가가 된 후 "창업 초기에는 도전정신을 가져야 하고, 규모가 커지면 사람들과의 조화가 더 중요해 진다"라며 도전정신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했다

- 1997년

성공이나 실패보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다. 엔씨소프트 (창업자: 김택진)

온라인 게임 서비스의 가능성을 아랑보지 못했던 시기에 김택진은 국내 초고속 통신망에 대한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판단했고 온라인 게임 사업에 도전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능성을 가지고 도전한 결과 성공을 이루어 냈다.

- 1998년

꿈을 포기하지 마라 열정을 가져라 카카오 (창업자 : 김범수)

김범수는 "남들보다 한발 앞선 시점은 6개월"이라며 행동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인터넷이 등장하자 온라인 게임에 뛰어들고, 아이폰이 출시됐을 때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에 스마트폰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하며 발 빠르게 움직였던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 미래를 스스로 창조하는 것' 이라며 후배들에게 혁신을 강조했다.

- 1999년

한글을 사용하는 검색 엔진으로 데이터 주권을 지킨다. 네이버 (창업자 : 이해진)

이해진은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이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터넷 검색 시장을 점유한 것과 달리 한국은 네이버가 꿋꿋이 버티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자국 언어 기반의 검색 엔진이 있어야 그 나라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는 자회사들의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에 힘을 쓰고 있다.

- 2011년

시장을 파괴하는 건 기술이 아니라 고객이다. 우아한 형제들(배달의 민족, 창업자 : 김봉진)

김봉진은 기업의 유일한 목적은 '고객창출' 이라고 말하며 기술을 통한 사람들의 편리와 일상의 혁신을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푸드테크 창시자인 그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자율주행 로봇기술을 이용해 배달 로봇을 선ㄴ보이며 자신의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 2013년

변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모여 역사에 남을만한 변화를 만듭니다.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창업자 : 이승건)

이승건은 치과의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지 않고,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첫 번째 창업 이후 8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세상이 필요로 하는 풍요를 공급 하겠다'라는 비전과 사명감을 가지고 난관을 극복했고, 한국의 금융산업을 바꾸어 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 2014년

매일 조금씩 무언가를 해내는 농부들의 성실함에서 오는 결실들을 배웠다. 컬리(마켓컬리 창업자 : 김슬아)

국내 최초로 신선식품 새벽 배송이라는 새 시장을 개척한 마켓 컬리는 '나와 내 가족이 사고 싶은 상품'을 판매한다는 모토로 설립되었다. 김슬아 대표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행복해지는 유통과정을 목표로 '피드백을 통한 발전' 즉, 고객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열정이 지속되면 기업은 성장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전시장을 계속 둘러보다 보니 나의 기업가 정신 유형을 테스트하고 메세지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테스트 결과 저는 기술혁신형 이었습니다. 저는 메시지에 아신미디어를 홍보했습니다.

기술혁신 리더형으로 나온 나의 기업가 정신 유형

전시관 옆건물에는 카페와 기업가정신 전문 도서관이 있습니다. 기업가 정신과 창업에 관한 책들이 모여 있습니다

기업가정신 전문도서관 1층(좌) 과 2층 (우)

도서관을 둘러보다 보니 저의 멘토이신 김삼문 멘토님의 책도 볼 수 있었습니다.

김삼문 멘토님의 책이 놓여있는 책장

지금까지 삼성 - 효성 - LG 창업가가 함께 심은 부자소나무가 있는 (구) 지수초등학교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진주에 방문하시게 된다면 지수초등학교에 들려 기 받고 오시는 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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