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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 가볼만한 곳 구포 테마거리 구포 만세거리

여행/걷기 좋은 길

by MasterHwan[마스터환] 2023. 3. 15.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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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스터환입니다. 2023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 이네요. 약 100년 전인 1919년 3월 1일에는 종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일제 식민지배에 저항하여 항거하는 3.1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부산 구포에서는 1919년 3월 29일 구포장터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구포시장에서 구포역 사이 거리는 구포 만세거리로 3.1 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벽화를 볼 수 있습니다.

구포 가볼만한 곳 구포 테마거리 구포 만세거리

구포 만세길은?

 

구포만세길은 낙동대로 1652번길에서 구포역으로 빠지는 길부터 시작하여 구포역과 구포만세 테머거리를 지나 구포시장으로 향하는 1.7km 구간의 길입니다. 길 이름은 1919년 3월 구포장터에서 있었던 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지어졌습니다. 구석구석 구포의 옛 시간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길을 거닐며 옛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느껴 볼 수 있습니다.

 

- 구포만세 테마거리 (그날의 함성을 그대로)

1919년 경성에서 민족적 거사인 3.1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그달 29일 구포에서도 대대적인 만세운동이 이어졌습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구포 장날, 이 거리는 온통 울려퍼지는 만세소리와 펄럭이는 태극기 물결로 가득했습니다. 거리를 거닐며 벽화로 표현한 그날의 함성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 구포시장(구포의 살아있는 얼굴)

구포시장의 역사는 400여 년으로 그 역사만큼이나 규모가 크고 인지도가 높습니다. 매달 3, 8일이면 5일장이 함께 열리는데 그날 무려 1,500여 개의 점포가 선다. 인심이 좋아 재래시장 특유의 흥정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배가 고파지면 맛난 먹거리가 넘치는 먹자골목으로 향하는 건 어떤가요?

 

- 구포국수 체험관(전통을 자랑하는 소울푸드)
구포국수는 6. 25전쟁 무렵 구포장터 일대에서 생산해, 피란민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졌던 소중한 음식입니다. 입구의 대형 구포국수 모형이 눈길을 끄는 체험관은 구포국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으며, 직접 구포국수를 만들고 맛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포만세길 지도

옛 구포만세길 여행지도

 

옛 구포만세길 여행지도

1. 주재소

1919년 3월 29일 구포면서기 임봉래 외 윤경을 중심으로 청년들의 만세운동을 일으키고 이때 김옥겸 외 11명이 일제경찰에 검거되어 구포주재소에 구금되었습니다. 오후3시가 조금 넘은 시각, 1,200 여명의 시위군중들이 검거된 자를 석방하라고 외치며 구포주재소로 몰려가 주먹과 곤봉으로 주재소 유리창을 파괴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이에 일제 경찰이 시위군중에 발포하여 9명이 부상하였고, 총 42명이 검거되어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2. 구포사림구명학교

1906년 구포지역 유지들이 설립한 사립학교로 1907년 10월 15일 개교되었다가 1918년 구포 공립 보통 학교로 되었는데, 이 학교가 구포초등(국민)학교의 전신입니다. 개교 당시 1년째로, 강변의 남창터에 위치하였으며 초대 교장에는 장우석 선생이 취임하였습니다. 건국 독립 유공자 외에 정계, 재계, 학계, 문화예술계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학교 입니다.

 

3. 구포은행

1908년 개화 선각자 윤상은 장우석의 주도로 설립되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민족계 지방 금융회사인 구포 저축주식회사의 후신으로, 1911년에 공포된 「조선 회사령」의 규정에 따라 설립 되었습니다. 후일 경부선의 개통으로 구포가 물자집산지로서의 지위가 약화됨에 따라 1915년 본점을 부산에 이전하여 경남은행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매년 구포 3.1만세 운동 재현행사가 시작되는 덕천초등학교

4. 감동진나루터

조선 시대 상주의 낙동나루, 합천의 밤마리 나루와 함께 낙동강 유역 3대 나루터 중의 하나입니다. 나라에서는 삼세조창인 감동창을 설치하면서 강수로를 이용한 물산의 집산지이자, 감동장을 중심으로 한 물류 교역지로서도 더욱 번성하면서, 감동진 나루터 인근은 조선 시대 낙동강 하류의 최대 상업포구포시로서 일제 강점기까지 나루터의 기능을 수행해 내었습니다.

 

5. 구포면사무소

일제강점기 시절의 옛건물로 1919년 3월 29일 상인, 노동자, 농민이 중심이 되어 들풀처럼 일어난 구포장터 만세 운동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합니다. 당시 애국지사 김윤길 등은 구포면사무소로 달려가 면장 윤영태에게 민족적 양심으로 뉘우치고 만세운동 동참을 촉구하였습니다. 철로 따라 연동 쪽으로 통행로가 난 곳에 옛날 구포면사무소가 있었으며, 1960년대까지 갑산 의원이 있었습니다.

 

6. 옛 구포시장

낙동강 수로교통과 교역의 시발지인 구포나루터 남창을 배경으로 강변 입구에서부터 안쪽 넓은 공터에 이르기까지 형성된 시장터로 구포 장타령이 전해질만큼 규모가 큰 장터였습니다. 이 장터에서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구포의 장터는 원래 강변 나루터 쪽에 있었으나, 1923년 중앙통을 중심으로 지금의 새 시장터로 옮겨 왔습니다.

정이있는 구포시장

7. 경부선 지선

1905년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선의 완전 개통 이후, 구포역 앞 강변 나루터의 도정 곡물을 열차로 전국에 운송하기 위해 부설된 철도지선(강안선)으로 구포역을 거쳐 일본 및 전국에 운송되었습니다. 구포역 앞 강변에는 철도 지선과 정미소가 들어서고, 강변 나루터에는 당시 상류로부터 배로 실어 온 곡물이 하적되었고 그 곡물을 도정하기 위해 대형 정미소들이 성업했던 관계로 구포는 가히 낙동강 하류의 최대 포구 도시였습니다.

 

8. 기로사

1918년 유홍환, 강신호 등 구포지역 유지들의 주도로 구포동 431번지에 건립한 구포와 사상지역 거주 원로들의 친목 모임이며, 당시 회원은 50세 이상 80세 이하의 원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지역사회 원로들이 모임을 갖고 상호 친목을 도모하면서, 젊은이들의 풍속교화를 통해 어른 공경의 미풍양속을 이어 가고자 설립하였습니다.

 

9. 구포우체국

1904년 부산 우체국과 동래 우체국에 이어 부산에서 세 번째로 개설된 우체국으로 감동창과 감동장을 중심으로 한 상업의 번창과 일본인 거주자의 증가로 인해, 양산군 좌이면 구포리에서 구포 우편 수취소로 개설되어 우편 업무 취급을 시작하였습니다

 

자료 출처 : 부산북구 낙동문화원

벽화로 그려진 구포 3.1 만세운동 모습

구포 3.1 만세운동 주요인물

 

구포만세길 벽화에는 구포 3.1 만세운동에 참여한 주요 열사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윤현진(1892 ~ 1921)
- 신학문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떠난 일본 유학길

- 조선유학생 학우회와 신아동맹당의 핵심인물로서 항일운동을 주도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차장을 지냈고 힘겨웠던 임시정부의 재정 상황을 회복하기 위해 힘쓴 임시정부의 살림꾼

- 독립을 위해 혼신을 다했지만 과로를 이기지 못하고 29세의 나이로 별세

 

 

임봉래(1890 ~ 1968)

- 구포 면사무소 서기였던 임봉래는 사립화명학교에서 친분을 맺은 양봉근에게 서울과 평양에서 진행된 3.1 만세시위에 대해 듣고 윤경과 유기호와 함께 구포만세운동을 계획

- 구포장날을 거사일로 정하여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여 시위

 

(좌) KTX 경부선 구포역 (우) 부산 지하철 3호선 구포역

윤경(1889 ~ 1977)

- 사립화명학교 출신의 양봉근과 임봉래에게 3.1운동 소식을 듣고 구포지역의 의거를 당부 받아 시위 주도

- 시위도중 주동자들이 구포주재소에 구금되자 주동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하게 대치

- 구포 만세 운동 이후 대천청년회를 조직하여 초대회장을 역임하고 학교를 설립해 신학문을 가르침

 

손진태(1900 ~ 1949 납북)

- 구포에서 자라 19세에 구포만세운동에 참여

- 주동자로 체포되어 4월의 징역을 받고 수감

- 와세다 대학에서 지도교수의 영향으로 민속학에 관심

- 그 후 조선민속학회를 결성하여 한국사 연구에 매진

- 그의 주도로 발간된 <<조선민속>>은 역사학의 중요한 결실

- 해방 후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임용

- 6.25 발발 후 납북

 

구포만세길 지도

구포장터 3.1 만세운동 기념비

 

구포장터 3.1 만세운동 기념비는 구포역 3호선 주변 구포 제방에 있습니다

구포제방에 위치한 구포장터 3.1 만세운동 기념비

1919년 3월 29일 구포장터에서 일어났던 3.1만세운동을 기념하고 만세운동에 참가한 선열들의 민족혼을 기리기 위하여 광복 50주년인 1995년 8월 15일 조성하였습니다.

구포장터 3.1 운동은 경성의전에 다니던 양봉근으로 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 받은 지역 청년들이 주도하였습니다. 3월 29일 정오, 청년들과 장날을 맞아 모인 장꾼, 농민, 노동자 등 1,000 여명이 구포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벌였습니다.

무자비하게 총칼로 제지하는 일경에 의해 9명이 부상을 입고 주동자 42명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고초를 겪었으나 구포 지역 주민들의 굳센 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보여준 의거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기념비 뒷면에는 구포장터 3.1 운동에 앞장 선 43분의 이름을 새겨 후세에 남기고 있습니다.

해마다 3월 29일에 즈음해 구포장터 3.1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열고 온 몸으로 일제에 항거한 구포 주민들의 민족 정신을 면면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구포 가볼만한 곳 구포 테마거리 구포 만세거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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