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독도를 지킨 안용복 사당이 있는 수영사적공원

여행/공원

by MasterHwan[마스터환] 2023. 4. 21. 23:05

본문

안녕하세요! 마스터환입니다. 부산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만나는 수영역에는 조선시대부터 장이 열리던 수영팔도시장과 함께 독도를 지킨 안용복 사당이 있는 수영사적공원이 있습니다. 수영사적공원에는 안용복장군사당과 함께 25의용단, 수영고당, 수영사적원, 야외 놀이마당, 수사선정비, 부산 좌수영성지 푸조나무, 부산 좌수영성지 곰솔, 경상좌수영성 남문이 있습니다.

독도를 지킨 안용복 사당이 있는 수영사적공원

 

경상좌수영성지

 

수영사적공원 성지는 경상좌수영이 있었던 곳에 설치되었던 군사적 방어시설입니다. 경상좌수영은 경상좌도 수군의 본영으로 서울에서 보았을 때 낙동강의 왼쪽을 지키던 수군의 최상부 군영을 말합니다. 정확히는 낙동강의 동쮹에서부터 경상도 남, 동쪽 해안 방어의 총책을 맡았습니다. 무관 정3품인 수군절도사가 맡아 관리하였으며 그 아래에 1개의 첨사영(수군첨절제사가 머물던 군영)을 두었고, 경상좌도수군절도사와 수군 등이 소속 되었는데 다시 그 아래에 10여 개의 만호영(정 4품 무관 만호가 머물던 군영)을 두었습니다. 경상좌수영성은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는 약 2,147m, 높이는 4m 입니다. 성에는 우물 3개, 성문 4개,  수구 4개가 있었고, 성 바깥에는 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옹성 3곳, 치성 7곳을 두었습니다. 동문을 영일문, 서문을 호소문, 남문을 주작문, 북문은 공진문이라 하였는데 이들 성문에는 각각 문루(아래에는 출입을 하는 문을 내고 위에는 누를 지어 사방을 두루 살피는 기능을 가진 건물)가 딸려 있었습니다. 경상좌수영은 본래 부산포에 있었으나, 여러 차례 옮겨가며 운영되었습니다. 세조 5년(1459년)에는 울산 개운포로, 중종 39년(1544년)에는 동래 해운포로, 인조 14년(1636년)에는 다시 동래 해운포의 옛 자리로 옮겨졌고, 고종 32년(1895년) 7월 군재 개역에 따라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수영사적공원 전체지도

25의용단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1972년))

수영사적공원 25의용단

이 단은 임진왜란시 수영성에서 일본군에 저항하다 죽은 성민의 의용을 기리는 곳입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시 경상좌수사는 수영성을 버리고 달아놨으며, 이곳에 주둔한 일본군은 7년 동안 약탈과 살육을 감행하였습니다. 이때 수영성의 수군과 성민 25명은 성문 밖에 모여 '싸우면 이겨서 살 것이오, 싸우지 않으면 망하리로다. 나라의 존망이 경각에 있거늘 어찌 삶을 구하여 산야로 달아날 것인가. 단 한번의 죽으로써 나라에 보답하리라.' 하고 피로써 맹세한 후 일본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전개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지금 비문에 새겨진 이름에서 전사한 이들이 일반민들이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5인의 의용이 드러난 것은 1609년(광해군 원년)에 동래부사 이안눌이 지방민들의 청원에 따라 25인의 사적을 모아 정방록에 싣고 이들의 집 문에 의용이라는 2자를 써붙인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후 순조대(1800~1834)에 동래부사 오한원은 이들의 후손들에게 부역의 의무를 면제시켜 주고, 글을 지어 포상하였습니다. 1853년(철종4년)에는 경상좌수사 장인식이 수영공원에 비를 세워 의용단이라 하고 매년 음력 3월과 9월 말정일 두 차례에 걸쳐 제향을 봉행하였습니다. 그때 제주는 경상좌수사가 맡았습니다.

1894년 군제개혁으로 경상좌수영이 폐지되자 수영면의 면장이 제사를 주관하였습니다.

일제시대에 일본 면장이 부임한 이후에는 수영기로회에서 주관하였으며, 1977년부터 (사)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와 수영향우회에석 주제합니다. 현재는 음력 9월 말정일에만 제향을 봉행합니다

(좌) 25의용단 옆으로 수영사적공원으로 가는 길 (우) 수영사적공원 내 대나무 밭

수영사적공원 곳곳에는 25 의용단의 모형이 있습니다.

(좌) 왼쪽부터 25의용 김달망, 최한연, 김헤농 (우) 왼쪽부터 25의용 최한손, 박림, 이실정
(좌) 왼쪽부터 25의용 김덕봉 박응복 (우) 왼쪽부터 25의용 이은춘 최수만

수영사적공원 내 수영야류, 좌수영어방놀이, 수영농청놀이, 수영지신밟기 등 무형문화재의 정기공연과 주민 및 관광객을 위한 상설공연이 이루어지는 야외놀이 마당입니다. 방문했을때는 마당극 연습중 인듯 했습니다.

수영사적공원 야외놀이마당

수사선정비

 

수영사적공원 수사선정비

경상좌수영에 근무했던 역대 수사들의 공덕을 새긴 비석들로 현재 33개의 비석이 보존되고 있는데 그 모양과 크기가 각양각색입니다.

 

수영사적공원은 경상좌수도수군절도사영의 옛터입니다.

좌수영의 총사령관인 수군절도사는 정3품 무관으로서 통칭 수사라 하였으며  낙동강 동쪽에서 경주에 이르기까지 해안방어를 수행하였습니다.

여기 33기의 비석은 조선시대 인조 17년(1639)부터 고종 27년(1890) 서아애 수군절도사와 무관인 우후의 재임중공덕을 칭송하는 선정비이며 좌수영성지 정비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수영성 남문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이곳에 모아 재임연도순으로 새롭게 단장하였습니다.

경상좌수영성 남문(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17호 (1972년 6월 26일 지정))

 

수영사적공원 경상좌수영성 남문

경상좌수영-성 남문은 조선시대에 동남해안을 방어했던 수군을 지휘하는 본부인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성'의 남문으로 아치형 석문입니다.

이 남문은 숙종 18년(1692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 자리에서 약 200m쯤 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때 수영동에 있는 옛 수영초등학교 교문으로 이용되었고 1962년 6월에 수영초등학교가 광안동으로 이전한 후 그곳에 방치되어 있다가 1960년대 말 현재 위치로 옮겨 보존하고 있습니다.

경상좌수영성 남문은 현재 앞뒤에 홍예(성문 등을 무지개 모양으로 쌓은것)와 홍예기석(홍예석을 쌓기 위해 가장자리에 기둥처럼 놓은 돌) 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좌우 10m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으며 전면 홍예기석 앞에는 같은 크기의 사각형 돌기둥 위에 '박견'이라는 조선 개 한 쌍이 양쪽에 나란히 서 있습니다

조선개 '박견'을 성문 앞에 둔 것으로 보아 경상좌수영성은 왜구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형태의 돌조각상이 성문 옆에 설치되어 있는 경우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것으로 독특합니다.

부산 좌수영성지 푸조나무(천연기념물 제 311호(1982년 11월 9일 지정))

 

수영사적공원 부산 좌수영성지 푸조나무

부산 좌수영성지 푸조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던 당시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었습니다. 높이 18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8.5m, 가지퍼짐은 동서로 23m로, 마치 두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띕니다. 이 나무는 팽나무와 비슷하여 곳에 따라서는 개팽나무 또는 검팽나무라 불리기도 합니다

나무의 유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마을 사람들은 나무에 신성한 혼이 깃들여 있다고 믿으며, 이나무를, 마을을 보호해 주는 신으로 여깁니다.

부산 좌수영성지 푸조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왔으며 민속적,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습니다

 

부산 좌수영성지 곰솔(천연기념물 제270호(1982년 11월 9일 지정))

 

수영사적공원 부산 좌수영성지 곰솔

부산 좌수영성지 곰솔은 높이 23.6m, 둘레 4.50m로 소나뭇과에 해당하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던 당시 나이가 400년 정도로 추정되었습니다. 소나무의 겨울눈*은 대개 붉은 색을 띠는 데 반해 곰솔은 회백색인 것이 특징입니다. 이와 같은 특성을 지닌 곰솔은 바닷가를 따라 자라기 때문에 '해송'으로도 부르며, 줄기 껍질의 색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에 이곳 수영구에는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성*** 이라는 병영****이 있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 당시 이곳의 군사들은, 이 나무를 군영을 보호해주는 신성한 존재라고 생각하여 나무에게 자신이 무사하기를 기원했다고 합니다.

부산 좌수영성지 곰솔은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민속적, 문화적 자료로서의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습니다.

 

* 겨울눈 : 늦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생겨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봄에 자라는 싹

** 경상좌도 : 조선시대에 경상도 지방을 동, 서로 나누었을 때 동부지역에 속하는 행정구역

***수군절도사영성 : 수군절도사가 관리, 감독하던 군영 (수군 : 조선시대에 바다에서 국방과 치안을 담당하던 군대)

****병영 : 군대가 집단적으로 거처하는 곳

 

안용복 장군 사당

 

수영사적공원 안용복 장군 사당

안용복 장군은 조선 숙종(1675 ~ 1720)때 동래출신(현 수영구 수영동 부근) 어민으로,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의 수군인 능로군이었습니다.

당시 왜인들이 우리의 울릉도와 독도를 죽도라 부르면서 자주 침범하자, 동료와 함께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시키고, 일본의 에도막부로부터 다시는 침범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울릉도와 독도 수호에 큰 업적을 세워 후세 사람들에 의해 장군이란 칭호를 받으신 분입니다.

장군의 업적을 후세에 오래도록 기리고자 부산 시민의 뜻을 모아 이 곳(수영사적공원)에 사당과 동상을 건립하였으며, 1967년 건립된 수영공원 정상의 충혼탑을 이전하여 새로이 단장하였습니다

(좌) 안용복사당 앞마당 좌측에 위치한 안용복 장군 동상

수영사적공원 내 보호수와 준보호수

 

수영사적공원 내에는 보호수와 준보호수가 많이 있습니다. 준보호수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준보호수는 100년 미만의 나무를 뜻하는 줄 알았는데 검색해 보니 보호수 지정 기준에는 부족하지만 보존할 가치가 있는 나무라고 합니다

수영사적공원 내에 있는 보호수와 준보호수는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야외놀이마당 지붕을 뚫고 자라는 준보호수(노거수) 입니다. 노거수는  나무의 수령이 오래된 당산목, 풍치목, 정자목 등의 나무입니다.

수영사적공원 야외놀이마당 지붕을 뚫고 자라는 준보호수

지정번호 : 수영구 - 10호 지정일자 : 2015년 2월 17일
수종 : 곰솔 소재시 : 수영동 229-1
수령 : 80년 관리자 : 수영구청장
수고 : 25m 가슴높이지름 : 0.74m(나무둘레 2.3m)

 

지금까지 독도를 지킨 안용복 사당이 있는 수영사적공원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