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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민공원 내 야외에 있는 역사 유물

여행/박물관

by MasterHwan[마스터환] 2018. 8. 20.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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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민공원 공원역사관 앞 야외에는 부산시민공원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부산시민공원 야외에 있는 역사유물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각 유물 설명은 시민공원 내 유물앞에 있는 텍스트 설명을 가져 왔습니다.


비로자나반가석불과 협시불

가운데 반가부좌를 하고 앉아있는 석불은 비로자나석불이며 그 양쪽 옆으로 협시불이 서 있습니다. 현재 부산시민공원은 1930년에 부산서면경마장이 들어선 자리였습니다. 석불과 함께 마두 관세음보살 표시석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 석불은 경마대회 때 마주와 기주가 참석하여 말에 대한 위령, 공양제를 올려 병사한 말의 영령을 위로하고 다른 말들의 사고나 질병을 피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 석불은 오래전부터 캠프 하야리아 부지 안에 있다가 2002년에 문화유적조사 실시를 통해 확인 되었으며 2006년 미군 기지 폐쇄로 부산박물관에서 보관하다가 다시 원래 장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마두관세음보살 표시석


마두관세음보살은 마두관음, 마두대사, 마두명왕이라고도 한다. 모습은 말머리를 하고 있는 보살로 사방 마귀를 굴복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짐승을 교화하고 다스려 이롭게 한다고 힙니다. 민간에서는 마소 등 가축의 건강, 안전을 비는 뜻에서 돌에 마두관음을 새기기도 하였습니다. 이 표지석은 경마대회 때 마주와 기주가 참석하여 말에 대한 위령, 공양제를 올려 병사한 말의 영령을 위로하고 사고나 질병을 피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 석불은 오래전부터 캠프 하야리아 부지 안에 있다가 2002년에 문화유적조사 실시를 통해 확인 되었으며 2006년 미군 기지 폐쇄로 부산박물관에서 보관하다가 다시 원래 장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삼국시대 주거지

시민공원 부지에서는 삼국시대 유구가 가장 많이 조사되었으나 군부대 조성 시 훼손되어 원형이 온전하게 확인된 유구는 거의 없습니다. 복원된 다지구 3호 주거지는 방형에 면적 27m2 가량의 크기이며 벽면을 따라 약 1~1.5m의 간격을 두고 기둥이 10여 기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거지 중앙부는 불을 땐 흔적이 있으며 서쪽 벽면을 따라 배수구를 설치하여 남쪽 외곽으로 흘러나가도록 하였습니다. 굽다리접시와 손잡이바리의 조각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울산형 주거지)

울산형주거지는 외부돌출구, 정형화된 기둥자리와 벽도랑 등이 설치된 구조의 집을 말합니다. 복원된 나지구 3호 주거지는 배수가 없으며 장방형의 구조이고 면적은 약 14M2 가량이다 사질점토층을 수직으로 절개하여 벽을 만들고 바닥을 판 후 평평하게 다듬었습니다. 주거지 내부 중앙에는 불다짐의 흔적이 있으며, 그 주변으로 간격이 일정하게 배치된 4개의 기둥구멍이 있습니다. 민무늬토기와 손잡이바리의 조각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송국리형주거지)

송국리형주거지는 원형 혹은 장방형의 집터 중앙부에 기둥을 세운 후 서까래를 두른 형태의 원추형 움집을 말합니다. 시민공원 부지에서는 송국리형 주거지 7동이 확인되었으며, 복원된 나지구 1호 주거지는 면적 약 23m2(직경 5.4m)의 원형 움집입니다. 바닥을 판 후 평평하게 다듬었으며 가운데에는 도구제작 등 작업을 위한 용도로 조성된 타원형의 구덩이가 있고 양 옆으로 2개의 기둥 구멍이 있습니다. 민무늬토기 바닥부분과 손잡이바리 조각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청동기시대 돌널무덤(석관묘)

돌널무덤은 구덩이를 판 후 돌로 네모난 돌을 만들고 그 위에 뚜껑 돌을 덮은 형태의 무덤으로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양식의 하나입니다. 석관묘 1호는 6개의 넓적한 바닥돌과 깬돌을 이용하여 벽체를 조성하고 서쪽 벽에 널돌로 부장공간을 따로 설치하는 등 축조수법이 대단히 정교해 지위가 높은 사람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무덤 바닥돌 위에서는 간달돌칼과 간돌화살촉이 부장칸에서는 붉은간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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