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민공원 공원역사관 앞 야외에는 부산시민공원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부산시민공원 야외에 있는 역사유물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각 유물 설명은 시민공원 내 유물앞에 있는 텍스트 설명을 가져 왔습니다.
가운데 반가부좌를 하고 앉아있는 석불은 비로자나석불이며 그 양쪽 옆으로 협시불이 서 있습니다. 현재 부산시민공원은 1930년에 부산서면경마장이 들어선 자리였습니다. 석불과 함께 마두 관세음보살 표시석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 석불은 경마대회 때 마주와 기주가 참석하여 말에 대한 위령, 공양제를 올려 병사한 말의 영령을 위로하고 다른 말들의 사고나 질병을 피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 석불은 오래전부터 캠프 하야리아 부지 안에 있다가 2002년에 문화유적조사 실시를 통해 확인 되었으며 2006년 미군 기지 폐쇄로 부산박물관에서 보관하다가 다시 원래 장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
마두관세음보살은 마두관음, 마두대사, 마두명왕이라고도 한다. 모습은 말머리를 하고 있는 보살로 사방 마귀를 굴복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짐승을 교화하고 다스려 이롭게 한다고 힙니다. 민간에서는 마소 등 가축의 건강, 안전을 비는 뜻에서 돌에 마두관음을 새기기도 하였습니다. 이 표지석은 경마대회 때 마주와 기주가 참석하여 말에 대한 위령, 공양제를 올려 병사한 말의 영령을 위로하고 사고나 질병을 피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 석불은 오래전부터 캠프 하야리아 부지 안에 있다가 2002년에 문화유적조사 실시를 통해 확인 되었으며 2006년 미군 기지 폐쇄로 부산박물관에서 보관하다가 다시 원래 장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
시민공원 부지에서는 삼국시대 유구가 가장 많이 조사되었으나 군부대 조성 시 훼손되어 원형이 온전하게 확인된 유구는 거의 없습니다. 복원된 다지구 3호 주거지는 방형에 면적 27m2 가량의 크기이며 벽면을 따라 약 1~1.5m의 간격을 두고 기둥이 10여 기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거지 중앙부는 불을 땐 흔적이 있으며 서쪽 벽면을 따라 배수구를 설치하여 남쪽 외곽으로 흘러나가도록 하였습니다. 굽다리접시와 손잡이바리의 조각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
울산형주거지는 외부돌출구, 정형화된 기둥자리와 벽도랑 등이 설치된 구조의 집을 말합니다. 복원된 나지구 3호 주거지는 배수가 없으며 장방형의 구조이고 면적은 약 14M2 가량이다 사질점토층을 수직으로 절개하여 벽을 만들고 바닥을 판 후 평평하게 다듬었습니다. 주거지 내부 중앙에는 불다짐의 흔적이 있으며, 그 주변으로 간격이 일정하게 배치된 4개의 기둥구멍이 있습니다. 민무늬토기와 손잡이바리의 조각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
송국리형주거지는 원형 혹은 장방형의 집터 중앙부에 기둥을 세운 후 서까래를 두른 형태의 원추형 움집을 말합니다. 시민공원 부지에서는 송국리형 주거지 7동이 확인되었으며, 복원된 나지구 1호 주거지는 면적 약 23m2(직경 5.4m)의 원형 움집입니다. 바닥을 판 후 평평하게 다듬었으며 가운데에는 도구제작 등 작업을 위한 용도로 조성된 타원형의 구덩이가 있고 양 옆으로 2개의 기둥 구멍이 있습니다. 민무늬토기 바닥부분과 손잡이바리 조각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
돌널무덤은 구덩이를 판 후 돌로 네모난 돌을 만들고 그 위에 뚜껑 돌을 덮은 형태의 무덤으로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양식의 하나입니다. 석관묘 1호는 6개의 넓적한 바닥돌과 깬돌을 이용하여 벽체를 조성하고 서쪽 벽에 널돌로 부장공간을 따로 설치하는 등 축조수법이 대단히 정교해 지위가 높은 사람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무덤 바닥돌 위에서는 간달돌칼과 간돌화살촉이 부장칸에서는 붉은간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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